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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

북유럽 03 / 스톡홀름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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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선상숙박이 분명 육지에서 보다는 불편했던 것 같다.

어제 밤 마신 술이 충분히 회복 될 만큼의 시간과 숙면 이었는데

아직도 술기운이 알딸딸 하다.

갑판에 나가 보니 분명 바다에 떠 있어야 할 배가 강을 따라 가는 듯 하다.

좌우로 섬들이 연이어지고 그사이를 배가 지나니 그냥 강 따라 가는 듯 하다.


스웨덴이다.

옛날 한참 캠핑 처음 시작하던 그 시절

최고의 부러움은 쉐에에엑~~~’ 거창한 불 소리를 내며 강하게 타오르는

그 스웨덴제 스베아 버너. 그 버너로 밥을하는 캠프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 그 바이킹으로 불리우던 해적들 또한 선망까지는 아니지만

나쁜놈들 이라는 이미지 보다는 뭔가 모르는 부러움이 있던 해적이었다.

아침햇살이 눈부신 날씨에 스톡홀름에 입항을 한다.

감라스탄 왕궁과 구시가지

길거리에 그대로 노출된 왕궁이 웬지 낫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 유럽 여행에서 접한 거의 대부분 왕궁이나 대통령 집무실등이

특별한 외곽 방어물 없이 국민에게 노출 되어 있었다. 그만큼 치안이 안전 한건가?

그런개념 보다는 그 위치가 어떠한 권위의 상징 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직업중 하나라는

개념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국가 봉급을 받으면서 대가로 일을 하는 사람 중 하나?

그런 차이가 아닌가???

바람이 좀 서늘하다.

왕궁 앞 그리 넓지 않은 광장에서 가이드 설명을 듣는다. 건물 바로 앞이다.

마침 아침 초병 근무 교대식이 있을 거라고 해서 근처의 구 시가지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메우고 교대식을 구경한다.

군인들의 얼굴이 20대 초반의 완전 알바생들 같다.

구 시가지에는 옛날 바이킹 시대의 문자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포탄이 건물벽에 박힌 체로 있고(물론 그렇게 꾸몄다고 한다)

죄수들을 묶어 놓았던 말뚝도 보이고….

건물과 건물이 그냥 붙어서 지어져 있는 전형적인 유럽도시의 뒷골목모양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

1620년대 왕실의 전함으로 건조되어 첫 출항시

인근에서 침몰된 배(바사호)를 인양하여 실물을 전시한 바사 박물관 이다.

침몰 350년 이후인 1950년대 말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프레체 에 의해 발견되어 1961년 인양되었다고 한다.

인양당시의 과정도 같이 전시 되어 있었다.

전함이란 목적에 맞게 중무장을 하다 보니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들렸지만 당시의 목선 제조기술이 이정도 까지 였나? 하는 놀라움은 숨길수 없다.



스톡홀름 시청사를 방문 한다.

앞뜰(?)의 경치가 시청사 라기 보다는 고급호텔의 야외 바비큐장(?) 같다.

파란 잔디에 조각상 그리고 바다강인가???

아무튼 이 근처의 바다는 강인지 바다인지 짠맛이 나는지 맛보기 전에는 모르겠다.

건너편에도 사람사는 동네가 보인다.

유럽 여러 도시들을 들리면서 느낀 것이

대부분 시청사가 관광코스가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듯 한데

시청사의 기능이 우리의 시청과는 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능적인 시청이라기 보다는 도시의 상징으로 대표성을 부여 한 거점으로의 청사인가??



도시의 유명세에 비해 너무 짧게 스쳐 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일말의 섭섭함과 함께 남강 이라는 한국식 식당에서 식사를 한후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동을 한다.

이역의 한식당이지만 제대로 된 한국 오리지널 맛이 듬뿍 담긴 음식이다.


장장 7시간의 버스….

집중력도 조금은 산만 해질 시기이다.

게다가 점심식사 든든히 했겠다. 자세불문 꿀잠에 빠진다.

사실 좀 잠자기가 아깝긴 하다.

그렇게 자다 깨다 하면서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향한다.

노르웨이로 가는길,,,,,노르웨이가 북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라고 한다.



유럽지역에 오니, 영어가 힘이 없는 것 같다.

아시아 권에서는 어디를 가도 안내판이 영어판이 반드시 있는데

여긴 그게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디카시대에 생긴 성향인데

안내판을 촬영해서 나중에 읽어 보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설명을 듣지 않고 안내판을 촬영해 오면 100% 무용지물이다.

사전을 들이대도 해석 불가한 현지어 안내판

영어 안내판은 본적이 없는듯 하다. 국가 자존심인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보고 있는 대상에 대해 알려 주는게 안내판인데

국제적으로 알려진 관광지에서 자기나라 말로만 안내판을 설치 하는 것은

무례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야 한글로 써 붙이면 더 이상 바랄게 없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분명 무리이고

그래도 최소한 영어는 국제공용어로서 역할을 하지 않나?

국제관광지는 최소 그 정도는 해 줘야 할 듯 하다.

이 참에 욕심 스러운 것 하나 더 한다면,,,,

관광객을 모집해서 가이드를 하는 여행사에서

간단하더라도 여행지의 안내판 정도의 해석판을 인터넷 홈피 써버에

번역해서 올려 놓고, 상품에 따라 예정지를

쭈욱 검색해서 뽑아 볼수 있도록 해 놓으면 참 편리할 것 같다.

말 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수 없는 정도도 아닐 듯 하다.

향후 스마트폰이 생활화 된다면 그런 콘텐츠 자체가

여행사의 판촉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성 싶은데

사업에 득이 된다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소비자 입장에서 바람이 생긴다.

어렵게 결심해서 다녀오는 여행인데, 남는 것도 많아야 되지 않나?

여행결과를 작성하다 보니 여행 중 간단간단 작성한 메모도 한계가 있고

기억력은 더구나 더 형편없고,,,,,

7시간의 버스이동간 빈틈을 이용해서 잠시 이야기가 주제를 벗어 난듯 하다.

노르웨이 입성을 하고는 한참을 더가서 오슬로 멀지않은 지역의

깨끗한 호텔로 들어 선다. 설악산의 오색약수터 정도 되나??

식당도 볼수 없는곳에 위치한 호텔인데 조용하고 좋다.

저녁식사는 인근식당에 주문한 도시락인데 품질이 좋다.

김치 튀김 밥 조그만 동그랑땡,,,등이 담긴 전형적인 도시락,

밥은 아직도 따뜻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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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계속 비가 온다.

버스에 올라타고 얼마 안가 오슬로에 들어 선다.

노르웨이~ 이번 여행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정이 노르웨이다.


그만큼 볼게 많은지? 어쨌든 잠시 맛보는 노르웨이의 자연이 무지 아름답다.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 인지라, 구름 모습의 변화가 심하니 풍경이 더욱 다양하다.

비 속에 오슬로 입성이다.


1차 방문지인 비켈란드 조각공원.

구스타브 비켈란(vigelend Adolf Gustav 1869~1946)이라는 조각가가 40 여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200여점의 화강암 작품과 청동작품들이 8-900m 길이의 좌우 대칭구조 일직선으로 조성되어 있다.

짙푸른 숲길로 잠시 유도 하더니 다리를 만나면서 조각들이 단체로 환영을 한다.

너무 많은 조각품이라 한점 한점 보고 느끼는 것은 어렵고 彫刻群 으로 전체를 보아야 같다.

일단 옷입은 조각을 점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누드(?)라고 해서 외설 스럽지는 않다.

남녀가 같이 누드로 부등켜 안고 있어도

전혀 외설 스럽지 않은 것은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속이 상해서 어쩔줄 모르고 발버둥치는 어린아이,,

가족들의 어울림, 노인네들의 외로운 군상,

두리뭉실한 엄마에 몽싱몽실 붙어 있는 아기들,

한점 한점이 느낌이 있는데, 너무 많으니 개성이 떨어지는 같다.

공원의 센터에 탑처럼 솟아 있는 모노리스(Momolith)가 위치나 크기로 보아

최고의 상징인듯 하다. 얼기설기 모여있는 잡상들이 화강암인데도 탄력(?)이 넘친다.





다음 방문지는 바이킹 박물관이다.

3척의 바이킹호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인데,

9세기 건조된 배라고 한다.

지난번 스톡홀름의 배가 1600년대 산이니 비교 자체가 의미는 없지만

용도가 달라 그런지 구조가 무지 단순하다.

그러나 측면과 선두의 외곽이 아름다운 여인의 S라인 같이 날씬하고 스무스 하게 빠졌다.

물에 띠우면 가벼운 힘에도 사르르 미끌어져 나갈 같은 날렵함,

당시 조선기술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역시 생활무대가 바다에 의존을 많이 했던 시기라 관련기술이 발달을 했고

발달된 기술이 있기에 남의것을 빼앗을 힘이 생겨 바이킹 해적이 생겼나 보다.


오슬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시청사를 방문 한다.

바다를 마주한체 좌우대칭의 건물인데

내부 1(2층인가?) 커다란 홀이 있고 사면 벽이 벽화들로 장식 되어 있다.

이곳 역시 일하는 공간으로의 시청보다는 관광코스로의 시청사 개념이 같다.

노동,경제,정치등,,,오슬로 시가 유지 될수 있는 원천적인 근원을 벽화에 표현했다고 한다.

수많은 관관객들이 홀에서 벽화를 감상하고,

단체를 인솔하는 가이드들의 목소리에 주변이 시끌시끌 하다.

바닷쪽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를 보니 이곳 역시 명당이다.

나중에 바닷쪽에서 오슬로를 다시 기회가 있었는데,

시청이 상당히 대표적 건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듯 하다.

사실 주변이 오슬로 최고의 번화가로 서울로 말하면 시청과 명동주변이 하다.






오슬로를 떠난다.

본격적인 노르웨이 경치 속으로 떠난다며 가이드가 복사된 지도를 한장씩 나누어 준다.

노르웨이 남부지역을 한바퀴 도는 코스이다.

노르웨이 스타일의 경치들이 서서히 펼쳐진다.

휴식장소는 조그만 까페…. 공짜 화장실이 있단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는데 7-8000 준듯 하다.

우리 같으면 점심 사먹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 있는 가격,,,,바싸다~~ 생각뿐이다.


스위스 하고 어디가 좋은가? 하면서 경치를 본다.

비교라기 보다는 유럽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다보니

우리의 자연과 많이 다른 분위기 때문에 든 단순한 생각이다.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도시가 보이는 언덕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멀리서 보는 도시지만 우리에게 많이 친숙한 이름이다.

쇼트트랙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던 시기 그 도시에서 큰 족적을 남긴것으로 기억을 한다.

올림픽 개최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오따강을 따라서 이동을 한다. 노르웨이의 도로는 폭이 상당히 좁다.

가이드 표현에 따르면 어느지점에서는 버스 두대가 깻잎 한장 간격으로

통과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노르웨이 운전은 상당한 스킬이 필요 할 듯 하다.

특히 겨울시즌에는 눈길로 변하기 때문에 이곳 면허증은 눈길면허가 따로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제도 안 만드나? 음주면허!!!!

알코올 농도 몇 상태에서 면허시험을 치루고 합격을 하면 그 이하의 알코올농도에서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제도…. 바람직(?) 할 것 같다.





오따 근처의 산장 호텔에서 하루를 쉰다.

조그만 호텔인데 구조가 복잡하고 방이 오밀 조밀 한 것이

방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산장 호텔이라고 해서 산턱에 지어진 산장 같은 움막에서

자는줄 알았는데 제법 깨끗하게 꾸며 놓은 아담한 호텔이다.

간단한 사우나 시설도 있던데 시간이 늦어 경험해보진 못했다.

호텔근처를 배회 하면서 사는 모습들을 구경했다.





한적한 동네의 아담한 호텔.....

일본 온천장을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 이다.

푹~~~~잔다.